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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 Learn : 배움은 계속된다.Apple Developer Academy @ POSTECH🍍 2024. 12. 17. 17:14
아카데미가 내게 남긴 것들
때때로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들보다 피부 밑 서려있던 감각들이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날, 달갑지 않은 객을 받은 집주인 눈빛 같은 바람이 온몸에 박혀 들었다.
다시 공기가 얼어붙으니 그때의 떨림이 또 한 번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한참 더웠던 여름 한 구석
실컷 뛰고 난 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단을 내려가다
마주친 태양의 눈높이가 어제와 일치했다.
문득 내일이 오늘과 같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별히 좋지도 않지만 나쁜 것도 없는 괜찮은 하루에 반복이라면
니체 영원회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설었던 길들이 이제야 발에 들어맞고눈에 걸리던 풍경들이 일상 속에 스며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익숙해진 하루들을 떠나보낸다는 게 아직은 이입보다는 이해에 가깝다.
똑같아 보이던 매일들이 꼬박꼬박 스쳐 지나가며 저만의 문양을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간듯하다.
숨부터 잘 쉬자
첫날 짐을 풀고 처음 찾은 곳은 운동장이었다.
매일 아침 달리며 낯선 공기에 점점 섞여 들었다.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 사이를 비집어 매일 발밑을 다졌다.
거울 앞에 서기보다 온몸으로 땅을 찍어대며
바라보며 탓하기보다 털어내려 애썼다.
나아가기 위해서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난생처음 배운 수영, 숨 쉬는 것부터 시작했다.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 쉬는 게 더 중요하다."
"공간이 마련되면 자연히 빈자리는 채워지게 되어있다."
물에 잠겨 내 안에서 뿜어지는 것들을 바라볼 여유가 생길 때쯤
그저 숨만 잘 쉬어도 되는데 뭘 그렇게 다그쳤을까 생각이 들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헛헛한 마음에 뭐라도 들이킬 심산으로 어둠 속 트랙을 돌았다.
출발하기로 하면 시작점이고 멈추기로 하면 도착점이니
어디에 있느냐에 크게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이 배운 바는 사람이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하고 멋진 모습으로 그려내도
그 끝이 닿는 곳에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코드 몇 줄로만 보이던 기능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어 보여도
함께하는 이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제 의미를 잃어버렸다.
해결하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일이다. 정말 힘든 일은 찾는 과정이다.
문제를 가진 이도 , 찾는 이도 모두 사람이기에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배움은 나오지 않으면 온전하지 못하다. 새로운 것이라 해도 내 안에만 머물면 고여버린다.
제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흘러야 한다.
들어준다는 것은 넘치지 않도록 받아주는 것이기에 감사한 일이다.
9개월간 수많은 아카데미 러너와 함께 하며 좋은 사람이 세상에는 꽤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 숨어들기보다 그 곁으로 들어가자. 나 또한 채워주는 사람이 되자.
허락을 기다리지 않는다.
눈앞의 과자를 이 악물고 참아내는 어린아이처럼
누군가가 이제는 해도 좋다며 허락을 해주기를 마냥 기다려왔다.
소중한 시간을 담보 잡았지만
결정되지 않은 채로 둔다면 가능성 또한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터일까?
근데 아카데미 기간 내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프로젝트를 옆에서 보고 나 또한 진행하며
처음에는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새 제 모습을 갖추는 과정을 여러 번 직접 목격하니
내가 하는 일이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하면 어떻게 또 되긴 되네 라는 경험이 누적되니 너무 겁먹고 뒤돌아서기보다
일단 손이라도 넣어 보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능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끌리면 일단 하고 생각하자.
세상에 내놓는 것부터 시작이다.
'잘 만들어서 스스로에게만 떳떳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겁쟁이가 되뇌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무언가를 만들었으면 반드시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
정곡을 찔리기도 하고 냉혹하게 깎아내릴 수도 있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해 방구석에만 고이 모셔 놓으면 먼지만 쌓일 뿐이다.
평가는 그 순간에 꽂혀 있는 것이기에 계속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완벽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순간의 완벽이 있다한들 우리 모두는 변화하기에
받아들이는 태도와 버틸 수 있는 체력만 있으면 된다.
1년 남짓한 기간이 나에게는 어지간히 인상 깊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나 보다.
아카데미 생활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배웠다고 생각한 지점들을 짤막하게 남겨두고자 시작한 글이었는데
적어 내려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이 고개를 내민다.
어떠한 것들은 찰나의 느낌만 남아 말로 표현하기에 애매한 것들이고
다른 것들을 아직은 내가 가진 단어들만으로 그려 낼 수 없다.
사실 글로 써놓은 것들도 "정말로?"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어찌 되었든 미련에 아쉬어하기보다 계속해서 배우며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하기에
이만 아카데미를 떠나보내고 라이프 롱 러너로서 살아갈 오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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